짧은 여정 속의 어머니
심재현
가슴에 새하얀 목화꽃으로
자리매김해 있는 나의 어머니
내 가슴에 목화꽃이 피던 날
어머니를 뵈러 간다.
신발도 거꾸로 신으신 채
이제나저제나 오려나
동네 모퉁이를 서성이시며
굽어진 골목을 바라보고 서 계신다.
길모퉁이 돌아서는 나를 향해
숨도 쉬시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와
이제 오느냐며 반기시는 어머니
얼굴에 목화꽃이 활짝 피신다.
나이 들어버린 내 모습에도
어머니에겐 여전히 자식이었는지
아기 얼굴 쓰다듬듯 쓰다듬으신다.
두꺼비 등이 되어버린 손이지만
그 손길이 얼마나
부드럽고 따뜻한지 모른다.
긴 밤을 지새우는
모자간의 대화에 누가 될까
울타리에 숨은 풀벌레마저 숨죽이고
만월이 된 달빛마저
고요히 멈춰 서버렸다.
곱게 늙으시길 바랬는데
세월은 나의 바램을 외면해 버리고
골 깊어진 주름과
쇠약해진 모습을 볼 때마다
긴 한숨만 나온다.
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
들어가시라고 손짓하며
자꾸 뒤를 돌아보지만
어머니께선 한 걸음도 띄지 않고
눈에 밟히시는지 그 자리에 서 계신다.
동네가 보이는 모퉁이를 벗어나
어머니 모습 사라질 때 즈음
자꾸만 눈시울이 붉어만진다.
얼마나 왔을까!
휴게소에 들러
어머니께서 싸주신
보자기를 열어보았다.
아들 올라가는 길 출출할까 싶어
삶은 달걀과 신문지에 싸여있는 소금,
그리고 누렇게 때가 찌든
편지봉투 하나가 들어있다.
갓 삶은 달걀인지
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다.
삶은 달걀을 하나 까서
소금에 찍어 먹는 순간
가슴이 먹먹하여
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.
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
소풍 때도 달걀은 상상도 못했었다.
간밤에 어머니와의 대화에서
그런 예기도 나왔기에
마음에 짐이 되셨는지에
이렇게 달걀을 싸주신 것 같다.
더 가슴을 아리게 한 건
누렇게 찌든 편지봉투에
꼬깃꼬깃한 만 원권 3장과
어머니의 서투른 글씨체로
지름 받아가그라 자오르지 말그라
(기름 넣어라. 졸지 마라.)
그렇게 쓰여져 있다.
얼마나 더 주고 싶으셨을까!
얼마나 자식이 눈에 밟히셨을까!
하는 생각에
한참을 넋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.
아직 집에 절반도 못 갔는데
집이 멀어서 언제 가느냐가 아닌,
아린 마음으로 어찌 가느냐였다.
올라오는 길이 얼마나 멀었는지
며칠에 걸쳐 올라오는 듯했다.
어머니의 사랑은
그저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
아가페 사랑 일 수밖에 없는 것을
새삼 일깨우는 짧은 여정이었다.
그런데 지금 난 어찌하고 있는가!